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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병장님! 사랑합니다!

박길수 | 기사입력 2022/03/04 [09:12]
45년전 막막했던 군생활 3년의 회상

추 병장님! 사랑합니다!

45년전 막막했던 군생활 3년의 회상

박길수 | 입력 : 2022/03/04 [09:12]

입대한 지 3개월 지나 이등병으로 자대에 막 배치되었다. 제대 3개월 남은 추 병장이 짠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더라. '어리뻐리한 놈이 왔네!' 머리를 한 대 '' 치면서. '! 돌대가리네! 빨리빨리 동작 안 할래? 저 굼뱅이 군생활 잘 허것네. 차라리 탈영하는 게 낫겠다.' 제대할 때까지 좋은 오락거리라도 생긴 듯, 추 병장은 나를 놀려대고 건드는 일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재수 없이 추 병장과 같은 통신병이라, 불행하게도 서로 붙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운명이란 기구한 연분을 말하는 모양이다. 전생에 내가 추와 무슨 원한을 졌을까? 추는 괜히 나에게 지랄하며, 툭툭 치면서 비웃거나 또 비난하는 일이 지겨운 군대 말년 고참병의 즐거움인 듯싶었다. 참 내 정신 말이 아니더라. 앞으로 꼬박 남은 군생활 3년을 곱게 보낼 수 있을 지. 그때 사실 내 마음 너무 막막하였다.

 

어느날 아무도 없는 산 꼭대기로 4명이 대대 관측훈련을 갔다. 관측장교 둘, 통신병은 추와 나, 두 사람이었다.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속으로 굉장히 고민스럽고 불길했는데. 내가 무전 교신을 하고있을 때, 추는 언제 왔는지 내 뒤에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더라. 만만한 쫄병을 괴롭혀야 군대 시계가 돌아가는 걸 추는 느낄 수 있었던 위인이었다. '병신 지랄허네. 무선 교신은, 새끼야! 고롷게 허는 거 아니여!'

 

군화발로 두어 차례 밟히고, 나는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부대를 벗어난 산 꼭대기라. 그래도 참아야 했는데. 정말 참았어야 했는데. 나는 고등학교 다니면서 갈고 닦은 유도실력을 정말 처음으로, 유감없이 발휘하고야 말았다. 발을 당겨 추를 넘어뜨려 놓고, 옆에 있던 장돌을 들어 마구 두들겨 팼다. '이 씹할 놈아! 내가 뭘 그리 보기싫다고! 그렇게 지랄허냐? 시도 때도 없이! 이 개새끼야!' 나는 채 분이 안풀려 추 목을 죽어라고 졸랐고, 추는 막 실신하려고 꼬르르 댔다. 그 때 술 마시고 막 관측소로 올라오던 장교 둘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소리치며 뛰어왔다.

 

'! 이 새끼! 미쳤냐! 동작 그만!‘

 

나는 그 중에도 군기가 들어있어서, 살고싶어 벌떡 일어섰고, 차렷 자세로 그 둘을 향해 우뚝 섰다. 장교 둘에게 낙신히 얻어터졌고, 그들의 긴 훈계가 악몽처럼 이어졌다. 그래도 혹시 봐줄 지 몰라, 참회의 눈물을 흘렸는데. 결국 부대장인 대대장 앞으로 끌려가고야 말았다. 대대장이 그러더라.

 

'이놈 죽을려고 환장했구나. 천하에! 하극상이네! 당장 이 새끼 영창에 처넣어 버려!'

 

보름 동안 사단영창에 나는 바로 갇히고 말았다. 헌병들에게 엄청 얻어터지고,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온갖 종류의 기합도 받아보고. 생각치 않은 경험을 했다. 그 중 철창 타기는 정말 힘들었다.

 

미래 두려움이 수반된 마음의 고통을 간직한 채 나는 그 기나긴 나머지 3년 간의 지루한 군생활을 넋나간 듯 견디어냈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것이 미래의 삶인 모양이라고. 조금 더 참았더라면. 혹시 이제라도 추 병장을 만나면 따뜻한 식사 한 끼 정겹게 대접해주고 싶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그때는 참으로 속이 없었다고 낮고 차분히 사죄하면서, 그를 꼭 껴안아주고 싶다. '추 병장님! 사랑합니다!' 

박길수

1952년 광주 출생, kt퇴직, 요양보호사, 6년전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져 현재 재택 간병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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